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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로 추천하는 사극 시리즈 2 - 뿌리깊은 나무 본문

드라마 이야기

마음대로 추천하는 사극 시리즈 2 - 뿌리깊은 나무

kaayaa 2021. 1. 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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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 하면 자연스럽게 세트로 따라오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바로 2011년 방영했던 ‘뿌리깊은 나무’인데요. 육룡이 나르샤를 집필한 김영현 박상연 작가, 육룡이 나르샤의 신경수pd, 별그대와 바람의 화원을 연출한 장태유pd의 작품입니다.

작가, pd모두 필모가 빵빵하신 분들인데다, 무려 세종 역을 맡은 배우가 한석규였고, 방영 초기에 당시 성균관 스캔들로 주가를 올리던 송중기가 세종의 아역을 맡으면서 더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뿌리깊은 나무는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집현전 학사 연쇄살인 사건이 얽혀서 진행되는 드라마입니다. 육룡이 나르샤와 마찬가지로 사실과 픽션이 적당히 섞여서 진행됩니다.

 

육룡이 나르샤와는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드라마라서 등장인물이 겹치기도 하고, 겹치는 인물은 아니지만 같은 배우가 출연하기도 합니다. 저는 뿌리깊은 나무를 먼저 보고 육룡이 나르샤를 봤지만, 육룡을 먼저 보고 뿌리깊은 나무를 보면 시간순에는 더 맞아서 다른 재미가 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출처 : SBS 뿌리깊은 나무 공홈

 


제가 생각하는 뿌리깊은 나무의 매력은 크게 세 가지 정도인데요.
첫 번째는 훈민정음 창제라는 사건을 통해 나타나는 치열한 정치철학적인 공방입니다.

 

아마 육룡이 나르샤를 본 분들이라면 정도전이 사대부가 주축이 된 단체를 만들었다는 걸 기억하실 거에요. 바로 그 조직이 뿌리깊은 나무에서 ‘밀본’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집니다. 밀본의 수장은 정도전의 후손인 정기준이고, 그는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는 걸 반대합니다. 온갖 방해를 하다가 결국 정기준과 세종은 토론을 벌이게 되는데요. 지금도 뿌리깊은 나무에서 가장 명장면을 꼽으라면, 저는 두 사람의 토론을 꼽을 것 같습니다.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한다고 하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혹은 사대주의 사상 때문에 반대했다는 인상이 있지만, 정기준은 나름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반대를 했다는 걸 보여줍니다. 거기에 맞서 반론을 제기하는 세종 역시 마찬가지였죠. 쉽게 익히고 쓸 수 있는 글자가 백성들이 스스로 지도자를 뽑는 민주주의까지로 이어지는 토론을 보면, 그 의견에 동의하는지 여부를 떠나서 정견이 다른 두 세력의 철학을 표현하는 작가분들의 역량에 감탄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시대적 한계가 어쩔 수 없이 존재하지만,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만인의 욕망이 드러나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입장에서 정기준의 염려도 일견 이해가 되더라구요. 그리고 그럼에도 백성을 사랑하고 믿기에 글자를 쥐어준 세종도 놀라웠습니다.

 

정기준 “기득권이 아니다! 기득권이 아니라 질서다. 기득권이 아니라 조화다. 기득권이 아니라 균형이다. 기득권이라 쉽게 말하지 마라. 우리 사대부들은 고려의 귀족과는 다르다! ......사대부는 아비가 사대부라 해서 사대부가 되는 것이 아니야. 마음을 갈고 닦아 수양하고 공부하고 과거라는 제도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아야 될 수 있는 게 사대부야. 사대부는 사대부로 태어나지 않는다. 사대부는 신분의 이름이 아니야. 사대부는 자질과 수양의 능력의 이름이야. 그리 쉽게 기득권이라 매도하지 마라."
세종 : "......하지만 너희 사대부도 결국 부패하게 될 것이다. 사대부는 그들의 능력만큼 욕망을 갖게 될 것이고, 또한 기득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기득권을 세습하려 할 것이다. 왜? 사람이니까. 이해한다. 내기를 해도 좋다. 사대부는 훗날 고려 후기에 너희들의 손으로 깨부순 그 더러운 음서제도를 부활시키고, 고인 물처럼 냄새를 피우며 썩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대부가 그리 되지 않도록 그 욕망을 누가 견제할 수 있겠느냐?
임금은 늘 견제 당해야 되는 존재이기에 한계가 있다. 하여 나는 백성으로 하여금 그 역할을 하게 하려 한다 백성이 힘을 가지고 권력을 나누게 되는 새로운 균형 새로운 질서 새로운 조화! 해서 나의 글자가 그런 새로운 세상에 작은 시작이 될 것이다."

 

정기준 : "백성이 글을 알면 읽게 될 것이고 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그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 즐거움을 알게 되면 결국 그들은 지혜를 갖는다. 누구나 지혜를 가지면 쓰고 싶어진다. 무엇을 위해 쓰겠는가? 욕망이다!
세종 : "그것이 왜 지옥이냔 말이다!"
정기준 : "모르겠는가? 그들의 욕망은 결국 정치를 향하게 되어있어. 국가의 정책에 관여하려 들테고 나아가서 그들의 지도자를 스스로 선출하려 들 것이다."
세종 : "그들이 그들의 지도자를 뽑는다. 그것이 네가 말하는 지옥이냐?"
정기준 : "이도! 동서고금에 그런 무책임한 제도가 어찌 있을 수 있단 말이냐! 정치는 책임이다. 유사 이래 정치의 본질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어. 정치는 오직 책임이야! 헌데 그들이 그들의 지도자를 뽑는다? 허면 그 지도자가 실정을 한다면 누가 책임져야 하나? 그 지도자를 뽑은 백성을 모두 죽여야 하나?"
세종 : "대체 너는 백성에 대한 신뢰가 어찌 이리도 없단 말이냐. 도대체 어찌 이리된 것이냐, 정기준."
정기준 : "내가 백성으로 살았으니까. 저들에게는 희망이없다. 역사를 발전시키는 건 저 무지몽매하고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군중이 아니라 책임을 질 수 있는 몇몇이다."
세종 : "네가 정말 그리 생각한다면 정말 측은한 일이로구나."

 

 


두 번째는 육룡이 나르샤와 공유하는 세계관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두 드라마는 같은 세계관을 공유합니다. 자세하게 보면 처음부터 같은 세계관을 염두에 둔 건 아닌지 약간씩 오류들이 보이긴 해요. 나이 설정이 좀 안맞는다던가 하는 문제들이 있거든요.

 

사소한(?) 문제를 젖혀두면 같은 세계관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들이 나름 쏠쏠합니다. 일단 무휼과 이방지, 조말생 같은 인물들이 두 드라마 모두 나옵니다. 사실 무휼과 방지 때문에 말이 좀 있었죠 ㅋㅋ 윤균상이 무휼을 맡은 덕에 엄청난 장신을 자랑하던 무휼이 갑자기 키가 줄기도 하고, 가장 충격적인 건 혼자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방지(...)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같은 배역은 아니지만, 같은 작감이라 그런지 두 드라마는 배우진도 꽤 겹치는 편입니다. 육룡에서 백성의 대표였던 분이는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를 돕는 궁녀로 등장합니다. 길태미를 연기한 배우 박혁권이 무려 집현전 학사 정인지(!)로 등장하구요. 비국사 적룡을 연기한 배우 한상진도 집현전의 젊은 학사로 등장합니다. 무명의 일원이었던 안석환 배우는 이신적 사형으로, 하륜은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명회로 등장합니다.

정도전이 만든 조직이 밀본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육룡에서는 무명이 나와서 빌런 역을 맡았는데 여기에서는 밀본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세 번째는 인간 세종입니다. 세종대왕은 워낙 유명해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죠. ‘대왕’ 칭호가 붙은 몇 안되는 왕이기도 하구요. 세종대왕의 워낙 업적이 전무후무하고 영향을 안 미친 영역이 없다보니 인간미가 느껴질 일은 잘 없는 것 같아요. 고기를 엄청 좋아했다는 정도의 이야기만 빼면 뭔가 범접할 수 없는 천재를 보는 느낌입니다.

 

육룡이 나르샤에서 인간적인 이방원의 모습에 포커스를 뒀다면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인간 세종의 내면을 비춰줍니다. 아직 태종의 그늘에서 어떤 왕이 되어야 하는지 고뇌하는 젊은 이도의 모습부터, 많은 반대를 뚫고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배포하려는 그의 결심, 자신의 동기를 돌아보며 고뇌하는 세종, 그리고 마침내 그 모든 방해와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훈민정음을 반포하는 모습까지.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2차원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세종대왕을 생생하게 살아있는 한 인간으로 볼 수 있는 드라마였습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라는 유명한 대사가 인간적인 세종의 면모를 잘 드러내는 대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세종대왕은 엄청나게 똑똑했기 때문에 나름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신하들과 집현전 학사들을 논리로 후두려 패는 장면도 볼 수 있습니다(...)

 

 

 


50화에 달해서 정주행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는 육룡이 나르샤와는 달리, 뿌리깊은 나무는 23회로 비교적 회차가 짧은 편입니다. 육룡이 나르샤를 이미 재밌게 본 분들이라면 연이어서 뿌리깊은 나무도 꼭 정주행하기를 추천드려요. 저의 개인적인 평점은 5점 중에 4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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