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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평범한 개인들이 만들어 낸 역사

kaayaa 2021. 3. 13.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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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넷플릭스에 한국 영화들이 대폭 업로드 됐습니다. 예전에 봤던 영화들도 많지만 오랜만에 보고 싶은 영화들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근래 미얀마에서 군부 정권이 재집권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죠. 우리나라도 비슷한 과거를 지나왔던 탓인지 더 마음이 쓰이더라구요. 그래서인지 영화 1987이 더 눈에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 1987는 박종철 열사와 고문 치사 사건, 이한열 열사의 죽음과, 그 죽음들이 촉발시켰던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그린 영화입니다. 택시운전사, 화려한 휴가 등과 함께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을 잘 그려낸 대표적인 영화로 손꼽히죠. 오랜만에 다시 영화 1987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영화 1987의 가장 큰 매력은 수많은 평범한 개인들의 선택으로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가 만들어졌다는 점이었습니다. 역사에서는 대개 걸출한 소수의 사람들이 큰 일을 해내는 것처럼 보이고, 어떤 사람들은 위인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엄청난 영향을 미친 사람들도 있지만, 역사의 큰 흐름은 결국 수많은 개인의 작은 선택들이 도미노처럼 굴러서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스틸컷


영화 1987에서도 그런 수많은 개인들이 나옵니다. 차마 물고문으로 죽은 흔적이 역력한 사람을 외면할 수 없었던 의사, 진실을 밝혀내려고 힘썼던 기자, 정부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은 편집장, 부검 명령을 철회하지 않은 검사, 정보를 전달해 준 교도소 계장 등.

이들 대부분은 평소 정의나 진실을 위해서 살았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서 그들은 ‘다른’ 선택을 했고, 이래봐야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말을 뒤집고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냅니다.

 

 

유해진 배우가 열연했던 한병용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가족들을 앞세운 협박에 김정남의 위치를 실토하지만, 남영동 사람들이 질려 할 정도로 고문을 오래 버틴 덕에 간발의 차로 진실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스틸컷


연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연희는 죽은 사람은 누가 책임지냐며 시위에 나서는 걸 싫어했던 평범한 학생이었죠. 하지만 유해진의 체포와 고문을 계기로 중요한 정보를 김정남에게 전달해주기를 선택하고, 이한열의 죽음을 알게 되면서 6월 민주 항쟁 시위에 나서게 됩니다.


그리고 버스 위로 연희가 올라갔을 때, 연희와 같은 선택을 한 수많은 개인들을 보게 됩니다. 영화 1987의 마지막 장면은 채 5분이 안되는 짧은 장면임에도 이런 이유 때문에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생각나고 보고 싶은 것 같습니다. 목소리만 특별 출연해주신 문소리 배우의 갈라지지만 간절하기 그지 없는 외침도 들을수록 감동이 되는 것 같구요.

 

 

출처 : 네이버 영화 스틸컷


영화 1987은 반대편에 선 사람들의 모습도 평면적으로만 그리지는 않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박처장(김윤석)과 조반장(박희순)이죠.

 

박처장은 공산당원으로부터 온 가족이 끔찍하게 살해 당하고 혼자 살아남았습니다. 더군다나 그의 아버지가 거두어준 사람에게 살해당하죠. 그 때문에 박처장은 공산당에 대해 엄청난 증오와 적개심을 품었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빨갱이 잡는 일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증오를 정작 죄 없는 사람들에게 퍼붓는 잘못된 선택을 한 셈입니다.


조반장은 개처럼 박처장을 따랐지만, 버려질 위기에 처하자 박종철 열사 고문 치사 사건에 관한 정보를 흘립니다. 하지만 가족을 볼모로 한 박처장의 협박에 다시 꼬리를 내립니다. 짐승 같은 야만의 시대를 만든 사람이 정작 본인도 야만에 희생 당하면서,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하거나 없애기 보다 다시 편승해버린 그의 선택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스틸컷


영화 1987은 논란도 있었습니다. 영화에서의 안계장과 달리 실존인물 안유 계장은 장기 비전향 수감자들에게 고문을 가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비로 운동권 학생들에게 약을 주거나 책을 몰래 넣어주는 일도 했던 모양입니다. 현실에서는, 특히 1987년처럼 험악한 세월 중에는 한 인간이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는 일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하정우가 연기했던 최환 검사역 역시 실제로는 많은 사람을 잡아들이기도 하고 고문을 묵인했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결코 선인이라 할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딱 한 번 검찰 조직의 안위 때문에 부검을 명령한 덕에 엄청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던 거죠.

 

 

아마 전체 내러티브를 위해 모든 이야기를 자세히 할 수는 없었던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미화’라고 단정 짓기에는 영화에서도 이들이 마냥 의로운 사람은 아니라는 뉘앙스가 있었기도 하구요.

좀 더 자세한 진실들이 나왔다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영화1987 덕분에 잘 알려져 잇지 않았던 안유계장이나 최환 검사에 대해서 알려졌다는 점에서는 그렇게 부정적으로 평가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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