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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멋대로 평점

자산어보, 충만하고 아름다운 수묵화

kaayaa 2021. 4. 7.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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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네이버 영화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가 3월 31일 개봉했습니다. 정약전의 책 자산어보의 내용을 모티브로 한 영화로, 설경구와 변요한을 주연으로 한 흑백영화입니다.


자산어보라는 책 자체가 백과사전(?)에 가까운 책이라 대부분의 내용을 픽션으로 쌓아올려가야 할 텐데 어떻게 영화를 만들지 짐작이 잘 되지 않더라구요. 예고편이나 영화내용을 미루어봤을 때는 너무 잔잔할까봐 다소 염려를 했는데, 영화가 시작되고 5분만에 그런 걱정은 씻은 듯이 사라졌어요.

 


**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스틸컷


신유박해로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정약전은 흑산도으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게 됩니다. 흑산도에서 정약전은 난생 처음 보는 바다 생물들에 관해 탐구 의욕이 솟아났고, 흑산도에서 어부로 살던 창대의 도움을 받아 책을 쓰기 시작합니다.

 

창대는 유학을 버리고 서학을 공부했다는 이유로 처음에는 정약전을 탐탁치 않아 했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서로 지식을 나누면서 두 사람은 점차 마음을 나누고 가까워지게 되죠. 똑똑했지만 서자라는 이유로 능력을 펴지 못했던 창대는 약전에게 많은 학문을 배우며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창대를 버렸던 양반 아버지가 찾아와 그를 데려가려 합니다. 약전은 창대에게 책 쓰는 일을 계속 도와주길 원했지만 더 큰 세상에 나가고 싶었던 창대는 그 청을 거절하게 됩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스틸컷


이준익 감독이야 워낙 유명한 감독님이기도 하지만, 새삼스레 정말 영화를 잘 만드는 사람이구나 감탄이 들었어요. 초반 5-10분만에 정말 몇 가지 장면과 대사만으로 정약전이 처한 상황과 당시 시대 배경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부분은 감탄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몇 마디 대사만으로 정가네 삼형제의 캐릭터가 확실하게 잡히고, 초반 몰입도를 확 높여주더라구요. 약전이 흑산도에 유배된 뒤에도, 큰 사건이 없어서 지루해지기 십상인데도 영화 보는 내내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상영 시간이 그렇게 짧은 편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모두 가상의 캐릭터일 텐데, 가거댁, 창대, 복례 등 인물들도 너무 생생하게 살아있고 깨알같고 자연스러운 웃음 포인트들이 많아서 중간에 몇 번이나 웃음이 터지기도 했어요.

 

특히 조우진 배우는 정말 ㅋㅋㅋㅋㅋㅋㅋ 그런 감초 캐릭터는 투머치하기도 쉽고 비슷한 역할을 계속 하다보면 질릴 수도 있는데 딱 그렇지 않은 정도로 선을 잘 타는 거 같아요 ㅋㅋㅋ

 

 

 

출처 : 네이버 영화 스틸컷


영화를 보면서 가장 좋았던 건 미장센이었습니다. 왜 이준익 감독이 흑백영화로 찍으려 했는지 알 것 같을 정도로 시각적으로 너무 아름다운 영화였어요. 컬러였다면 이런 느낌을 느끼지 못했을 것 같아요.

특히 창대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장면들은 거대한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스크린에서 한 번 더 보고 싶더라구요.

약전과 창대가 서로 교감을 나누면서 나오는 대화들도 정말 좋았습니다. 유학의 끝판까지 빠삭했던 약전은 어떤 학문적 기반에서 서학을 받아들였고, 어떤 사상을 현실에서 적용하고 싶어했는지, 그 당시 유학의 나라에 살던 사람이 어떤 시각으로 서학을 바라보는지 등 풍성한 학문적 교감을 함께 나누는 기분이기도 했어요.

약용의 목민심서와 흠흠신서의 길이 함께 나온 것도 좋았습니다. 뛰어난 학자들의 토론을 서사를 통해 보는 것 같았어요.

 

 

출처 : 네이버 영화 스틸컷


자산어보 영화를 보기 전에, 혹시나 잔잔한 영화가 아닐까 싶어 평론가 평까지 찾아봤었는데요. 박평식 평론가의 6.0 평점을 보고 관람을 바로 결정했더랬죠. 영화를 보고 나니 ‘흠뻑 취했다, 섬에서만’이라는 평론의 의미도 이해가 되더라구요.

 

흑산도 이후의 장면들도 나쁘진 않았지만, 이전보다는 밀도가 좀 떨어지는 느낌은 확실히 있었습니다. 아마도 창대라는 인물이 약전이 자산어보를 기록하는 걸 도와줬다는 거 말고는 알려진 사실이 없고, 영화의 서사도 끌고 가야 하고, 창대라는 인물의 변화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다만 앞서 나온 내용들이 워낙 너무 좋았고, 갑자기 티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느낌이 좀 들기도 했어요.

 


영화를 보고난 뒤에 이준익 감독님 인터뷰를 여러 개 찾아봤었는데, 아마 다음 시나리오는 문순득이나 동학 쪽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둘 다 너무 기대돼서(...)ㅋㅋ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둘 다 찍어주셨으면 좋겠네요ㅠㅜ

 

꼭 영화관에서 보길 강추드리는 영화였습니다. 제 개인적인 평점은 5점 만점에 4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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